데이터는 지혜가 되고 싶어 했다 - 사다리와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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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지혜가 되고 싶어 했다 - 사다리와 목어
Photo by Xin / Unsplash

데이터를 다뤄본 사람은 익숙한 그림 하나를 안다. 맨 아래 날것의 기록. 그 위로 정보와 지식. 맨 위에 지혜. 오를수록 정제된다고 믿는, 한 단씩 오르는 사다리다.
모두가 맨 윗칸을 원한다.
한 조직에서, 나는 그 사다리를 오르는 기계를 설계한 적이 있다. 데이터를 정보로, 정보를 지식으로. 잘 올라갔다. 너무 잘 올라가서 문제였다.
정보가 되면 그 정보를 다시 의심했다. 지식이 되면 그 지식의 예외를 찾아냈다.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기계는 멈추지 못했다. 꼭대기에 닿았다고 보고하는 순간에도, 이미 다음 질문을 짓고 있었다.
그제야 이상한 것을 보았다.


우리가 오르던 사다리에는, 앉을 꼭대기가 없었다.
지혜는 사다리의 맨 윗칸이 아니었다. 사다리에 맨 윗칸이 없다는 걸 아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혜였다.

멈추지 못하는 건 그 기계만의 병이 아니다.
세상에는 오래된 두 힘이 있다. 하나는 전체를 지으려 한다. 조각을 모아 완결된 구조를 세운다. 다른 하나는 그 완결을 의심한다. "다 됐다"는 말마다 빠진 조각을 찾아낸다.
두 힘은 이천오백 년을 싸웠다. 어느 쪽도 이긴 적이 없다. 짓는 힘이 칸을 세우면, 여는 힘이 그 칸의 틈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틈이 다음 칸이 된다. 의심이 다음 칸을 낳는다. 사다리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서로를 완성하지도, 흡수하지도 못한 채, 서로를 부른다. 기계는 그 둘을 한 몸에 담고 돌았다.


살아남는 것은 자가동력을 얻는다.
사상이든 시스템이든, 오래 버틴 것은 스스로 도는 바퀴가 된다. 처음엔 무언가를 위해 돌지만, 어느 순간 돌기 위해 돈다. 멈추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스스로 멈출 장치가 있는가.

절에 가면 목어(木魚)가 있다.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를 본떠, 늘 깨어 있으라 두드린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깨어있음만 말하지 않는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내려놓으라 한다. 쥔 것을 놓으라 한다. 깨어있되, 움켜쥐지 않기. 멈출 줄 아는 각성.


그 멈춤 장치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다. 자정능력.
강이 스스로 맑아지듯.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시스템도 스스로를 고쳐 균형으로 돌아오면 된다고.
그런데 강은 스스로 맑아져도, 무엇이 맑음인지는 정하지 못한다. 나쁜 균형도 균형이다. 굳은 조직도, 잘못된 질서도 저 나름의 항상성으로 돈다.


자연은 엔진을 준다. 방향은 주지 않는다.
무엇을 향해 맑아질 것인가. [시험이 채점당한 날]에서, "무엇으로 측정할 것인가"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의 질문이라고 썼다. 방향도 그렇다. 방향은 시스템 바깥에서 온다.

그래서 바닥없음을 딛는 법은, 발견이 아니라 태도다.
들숨에 세우고, 날숨에 비운다. 완성했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을 내려놓고, 다시 짓는다.
멈춤 장치는 정지 버튼이 아니다. 한 번 누르면 끝나는 스위치가 아니라, 내려놓았다 다시 드는 능력. 매 순간 다시 취하는 몸짓이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바닥없음도, 붙드는 순간 하나의 존재가 된다.
"바닥은 없다"를 바닥으로 삼는 순간, 없음이 새 바닥이 된다. 태도가 교리가 된다.
그런데 이 함정을 빠져나가는 데 새 규칙은 필요 없다. 숨이 이미 그렇게 쉬어지고 있다. 들숨을 영원히 쥐고 있는 사람은 없다. 차면 내쉬고, 비면 들이쉰다. 아무도 그것을 결심하지 않는다. 놓았다가 다시 들고, 들었다가 다시 놓는, 그 당연한 그러함.


호흡이 엔진이라면, 방향은 어디서 오는가. 날숨이 비우는 건 바닥이지 책임이 아니다. 딛을 땅이 없어도, 향할 곳은 남는다.


데이터는 지혜가 되고 싶어 했다. 사다리 끝에 앉으려 했다.
그러나 지혜는 앉는 자리가 아니었다.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도 오르내리는, 숨처럼 당연한 호흡이었다.


당신이 짓는 시스템은 지금 무엇을 향해 오르고 있는가 — 앉을 꼭대기인가, 아니면 멈출 줄 모르는 자기 자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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