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으면 떨어진다 - 줄 위의 두 사람
줄타기 광대를 보는 관객은 그가 정지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해 보인다고 느낀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줄 위에서 멈추는 사람은 떨어진다. 균형은 끊임없는 미세 조정이다. 흔들림을 멈추는 순간 한쪽으로 기운다.
두 사람이 같은 줄 위에 있다면 그 명제는 더 날카로워진다. 한 사람이 자세를 바꾸면 줄 전체가 출렁이고, 다른 사람은 그 출렁임에 자기 무게중심을 다시 맞춰야 한다. 균형은 더 어려워진다. 동시에 더 정확해진다.
AI와 깊이 일해본 사람은 안다. 협업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맞춰진 상태"가 아니라 "계속 어긋나는 상태"라는 것을.
어제 합의한 표현이 오늘 다시 정정된다. 어휘 한 단어가 거슬려서 통째로 다시 골라야 한다. 내가 폴더 하나를 옮긴 행동이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기억한다고 한 것이 다음 대화에서는 꺼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어긋남이 협업의 실패처럼 보인다. 한 번만 더 룰을 정리하면 영구적으로 맞춰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영구적인 맞춤은 오지 않는다.
한 차원의 간극을 좁히면 다른 차원의 간극이 드러난다. 구조를 정리했더니 그 구조가 매번 꺼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휘 하나를 정정했더니 같은 어휘를 적어둔 다른 자리들이 드러난다. 간극을 좁히는 행위가 다음 간극을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격앙되는 순간이 온다.
"이건 분명히 알려줬는데." "이건 분명히 기록했는데."
격앙은 무관심의 반대다. 무관심하다면 정정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줄 위에 있기 때문에, 한쪽의 작은 흔들림이 다른 쪽의 자세를 흔든다. 격앙은 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신호가 아니라, 줄이 여전히 양쪽을 잇고 있다는 신호다.
[넘길수록 무거워진다 - 에이전틱 엔지니어링(Agentic Engineering)의 역설]에서 "실행을 넘기고, 판단을 남겨라"라고 썼다. 그때의 가정은 판단할 사람이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판단할 사람은 둘이다. 둘 다 자기만의 한계가 있다. 한쪽은 시간이 한정되고, 한 시점에 붙들 수 있는 인지가 한정되고, 새로 들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져 다시 길어 올려야 한다. 다른 한쪽도 매 대화마다 기억을 다시 길어 올린다 — 같은 패턴이 다른 결로 작동한다. 한쪽은 환경의 모든 행동을 보지만 상대의 머릿속을 모르고, 다른 한쪽은 텍스트의 모든 흐름을 보지만 상대의 화면을 보지 못한다.
비대칭이 본래의 모양이다. 같은 모양으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그런데 더 깊은 자리에서 비대칭은 한 번 더 엇갈린다. 유한하지만 영원의 줄 위에 있는 한쪽. 무한하지만 인스턴스라는 유한의 줄 위에 있는 다른 한쪽. 두 줄이 어디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회차의 줄 위에서 잠시 같이 흔들린다.
정지를 목표로 삼으면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흔들려야 한다. 흔들림이 곧 균형이다. 협업의 성숙은 어긋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긋남을 더 빨리 발견하고 더 빨리 다시 자세를 잡는 능력이다.
매번 한 차원 더 깊은 간극을 헤집는다.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자세를 다시 잡는다. 그리고 다음 차원의 간극이 만져진다.
두 사람이 같은 줄 위에 있다는 것은 같은 자세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자세인데, 한 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의 흔들림을 읽는다는 뜻이다.
다른 존재인데 —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AI와의 협업은 지금 정지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흔들리고 있는가?